기말고사가 오늘아침에 다 끝났고, 이제 보고서만 하나 남은 상황인데, 뭐랄까... 좀 착잡하다.  시험기간은 넉넉했는데, 그래서 논거 같기도 하다.

막상 시험이 다가오자, 아무것도 한게없다는 불안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원래 성격이 그지같애서, 원하는 만큼 준비 못했다 싶으면, 그냥 안들어가 버리고 그럴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왠지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그럴때의 해법을 알고있다. 그것은 죠스캥 데프레나 팔레스트리나 따위의 미사곡을 듣는 것이다.

미사곡을 듣고 있노라면,  다음날의 시험은, 길고 긴 인생의 아주 작은 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더하여, 나는,  광활한 우주공간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해진다.


미사곡은 언제나 나를 평온하고 황홀하게 한다. 만약 내가 나를 속이고 종교를 갖게 된다면 그것은 천주교가 될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러한 방법을 자주 악용한다는 데에 있다.

아무튼 그렇게 마음의 평온을 얻은 나는 소파에 누워, 미사곡을 귀에 꽂고, 월드컵을 곁눈질로 시청하며, 교과서를 보았거나, 교과서를 곁눈질로 훑으며 월드컵을 시청한다.

그런식으로 새벽 2시녁까지 교과서를 본 건, 그것이 가장 마음편한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아침 마지막 시험을 봤는데, 시험지를 받는 순간, 아 x 됐다 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제서야 현실파악이 된거다. 내가 요 며칠간 왜 그렇게 넋이 나갔을까 하는 후회가, 기말 시험장에서야 드는거다.

아 수업도 안빠지고 수업시간에도 충실히 들은 과목인데...

아무튼, 뒤늦게 현실을 깨달았지만, 머리가 백지인 관계로,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내린 선택은, 그자리에서 공부를 하는것이었다. 이래저래 짜집기로 공식만들어보고, 그걸로 풀어보다가 이상하면 다시 다 지우고 다시 시도해보고.. 그랬더니 간신히 한문제 풀린거 같다. ㅠㅠ 그리곤 시간 종료...

아, 제출하고 가방싸는데, 누가 조교한테 중간고사 점수의 분포를 묻는다.  나도 덩달아 귀가 쫄깃해졌다.
1등이 70점이랜다.   헐...  ㅅㅂ   나잖아.   연이어 편차를 묻는다.  5점 15점 막 이렇댄다.  순간 기분이 씁슬해지며, 요 며칠 논게 가슴을 답답하게 눌러왔다.

이 기분을 수상치환하여 병에 담아두고 싶은 심정이다. 가끔 현실도피를 하고픈 기분이 되었을때, 그 결과가 좋지 않을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