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Misc.2009. 5. 1. 00:09 |

일전에 정수론 시험을 보는데 시험시간 1시간 15분에 문제가 증명문제 다수 포함해서 40개가 나온적이 있었다.

한문제 증명할려면, 암기를 했다쳐도, 광속으로 써내려간다쳐도, 5분은 족히 걸리는 정리들이 많은데, 1시간에 40문제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시험중 여기저기서 불만섞인 한숨이 터져나왔고, 급기야 질문이 나왔다. 시험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어차피 다 똑같은 조건 아닌가요? 아는것만 골라서 푸세요. 라고 하더라는...


어차피 다 똑같다 !?...  난 속으로 참 천박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이런 표현을 쓰는데 마음이 편한건 아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그런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강사수업은 듣는게 아닌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실제로 나는 강사수업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시간표상 어쩔수 없이 들어야 할 때가 있다.


만약, "그것도 다 실력이다" 라고 말한다면, 뭔가 세상을 달관한것과도 같은 말투에, 나는 순간 할말을 잃을것이다.그러나 저 말을 곰곰히 곱씹어 보면, "어차피 세상 사는게 다 그런거지" 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실력이라는 애매한 단어하나로 쉽게 표현하기엔 사람이 갖는 스펙트럼이 너무 넓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적어도 대학이라면 좀 진지한 척이라도 해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상하게, 수업을 듣다보면 강사님수업하고 교수님수업의 차이를 자꾸 느끼게 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판단이겠지만, 아무튼 나는 확실히 그렇게 느낀다. 교수님들의 수업이나 시험에서 느껴지는 포스같은것이 이상하게 강사분들 수업에서는 느끼기가 힘들다. 수업의 깊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시험문제도 동일한 파워로 다가오질 않고, 이상하게 좀 가볍다. 왠지 동네 학원에서 시험 보는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매우 대비되는 태도 두가지를 떠올려보면....

1. 시험성적분포가 적당하게 분포를 이루어줬으면 좋겠다는, 강사님의 마음. 그래서 다들 시험 잘보면 좀 곤란하시다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입장. 
->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평가를 위한 평가" 적인 측면이 있다.


2. A 받을 실력있는 학생이 없으면, A는 한명도 안나간다. 전원 실력이 떨어지면 전원 F다. 그러나 전부 실력이 출중하다면 내가 학적과하고 싸워서라도 전원 A를 주겠다 라는 교수님의 권위 넘치는 말씀.

-> 뭔가 우러러보게 되는 마음이 된다.


물론 이것은 편견이다. 그리고 이런류의 편견은 내가 혐오하는 부류의 편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런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일종의 반복경험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 갑자기,  "어차피 다 똑같잖아" 하니까 생각나는게 있다.


논리적 성향이 강한 학문에서 많이 나타나는 성향중에, 문제를 해결할때, 문제의 바운더리를 고려하는 습관이 있는데, 일종의 극단적인 케이스를 미리 고려해 봄으로써, 절대로 불가능한 기본 전제를 얻고 시작하는 방법이다. 극단적인 케이스를 고려하는 습관은, 매우 쓸모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간혹, 사람들과의 대화에 문제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일상언어는 모호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사람을 좀 시니컬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차피 다 똑같은거면 달리기로 하지 그래요? " 따위의 불손한 마음이 그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시니시즘은, 사람들이 주로 범하는 전건부정의 오류나 후건긍정의 오류와는 다른 얘기이다. 오히려 이러한 오류에 더 민감해진다.

A: 사랑하면 예뻐진대.
B: 참내, 그럼 예쁜애들은 다 사랑하는거냐?

B같은 사람과는 논리적인 말을 섞고싶지않은 마음이 생길수 있다.





그건 그렇고.... 하려던 얘긴 이게 아닌데 ....


그러니까...  오늘 시험이 정말 훈훈했다는 기억을 꼭 남겨높고 싶었던 거다.


시험문제 4개에 시험시간은 자그마치 4시간 !!!!!


" 이원종교수님 존경합니다. 수업중에도 존경심이 샘솟을 때가 많았지만, 오늘은 특히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녁 안먹은 사람들 빵사다주시고 시험보라고 하실때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



아~~ 문제 4개에 4시간이라...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사실 문제당 대략 1시간 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는 적정시간이다. 실제로 숙제를 할때 한문제에 한시간은 훌쩍 넘길때가 많다. 시험문제가 적어도 숙제급 문제라면 문제당 1시간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거니까 옳다 그르다 할수는 없는 문제고, 그냥 개인적으로, 시험을 잘보고 못보고를 떠나서, 1시간에 40문제짜리 시험하고, 4시간에 4문제 짜리 시험하고 놓고 볼때, 후자가 더 나의 성향에 맞다는 얘기다.


그나저나 오늘 하루 참 빡세다. 오후 1시에 양자수업, 4시에 해석수업, 7시부터 11시까지 역학중간고사( 역학은 재수강이라 큰 부담은 없지만..). 아 게다가, 내일 오전 10시 (아 오늘이구나) 까지 양자숙제...  지금부터 하면, 한 4시쯤에나 스쿠터달려서 내고 올수 있겠다. ....새벽엔 추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