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타이밍

Misc.2008. 12. 14. 00:52 |

교육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이야기.

아주 어린아이에게 못을 박도록 시키면, 한참을 낑낑거리고 고생을 하다가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가령 딱딱하고 묵직한것을 사용하려 든다던가... 그리고나서 한참후, 망치를 주면, 아이는 " 이열~ +_+ ! "  하면서 뭔가 학문적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반면에 처음부터 망치를 주면, 어떠한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고... 실제로 그런지(grunge?)는 모르겠다만, 시사하는 바에는 매우 동감한다.




어떤것을 처음 공부할때, 뭔가 흐릿하면서도 그 의미는 제대로 모르는, 그러면서도 그냥저냥 갈챠주는대로 문제는 풀겠고... 여러과목이 동시에 이딴식이고, 뭐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짜증이 나 있는 순간, ( 아마도 교수님 혹은 텍스트북이겠지만 ) 무언가로부터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대단한 혜안을 얻게되면, 그 감동이 실로 크고도 짜릿하더라.



이러한 감동은 마음에 남아 계속 공부를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곤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감동을,뭔가 비슷한 과정의 고생을 아직 거치지 않은 사람, 가령 이제 막 그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전달했을때, 그는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더라. 공부는 짜릿한 반전의 스릴러 무비와도 같은데, 이럴때 나는 단지 스포일러일 뿐이다.



나는 선행학습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방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를 하지 못하는 편이다. 선행학습의 주체가 "엄마" 인 경우가 그렇고, 안시키면 안될것 같은 "불안감"이 동기인 경우가 그렇고,  " 한번 훑어보면 다음에 볼 땐 좀 낫겠지" 하는 계산이 그렇다. ( 물론 그것이 효과가 없진 않지만... )  아무리 공부가 "해야 되는 것" 이라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 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교수자는 학습자에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전해주고 싶을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진 않을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제 막 극한을 배우기 시작한 애한테 로피탈 정리 가르쳐주면서 현혹시키는 경우가 그렇다. 그 아이가 로피탈의 열매에만 현혹되어 반드시 거쳐야 될 고난의 과정을 건너뛰게 된다면 그것은 독이 됨은 분명하다.


뭐든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그 타이밍을 재는 것은 교수자의 몫이며, 학습자의 상태와 성향등을 파악한 뒤에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학습자 역시도 " 그때 그 선생님은 왜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은거야?" 라며 탓할 것만은 아니다. 크로네커 델타를 예로 들면, 상황에 따라 "그냥 같으면 1 다르면 0 인 기호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야 할 때도 있는 거다. 굳이 그것이 중요한 주제가 아님에도, 뭐 듀얼 스페이스를 연결해주는 가교라느니, 텐서라느니 하는 말을 안했다고 해서, 교수자의 식견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다 때와 상황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논점을 흐리거나 배를 산으로 가게 하기도 한다.




타이밍이 연애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