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나 한국이나 노벨평화상 받고 까이는 나라기는 마찬가지다.
"아빠 나 한국싫어!" 가 떠올랐지만, '그래도 중국보단 나아'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직업상 일본인들을 많이 상대하시는 누군가 왈 "일본인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 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교양' 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강석진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하시며, "내가 내 속마음대로 행동했으면 사람 여럿죽였다" 라고 하셨다.

기분나쁘다고 깽판치고, 화난다고 욕하고... 이는 마치 개가 똥마려우니까 똥싸는거랑은 다른듯 같다.
내가 티벳에서 7년을 보내는 동안 겪었던 중국의 만행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어느 중국인 중국어 강사가 수업중에 '달라이라마' 는 인육을 먹는 악마라고 독설을 퍼부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국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중국이 싫어진다. 일전에 일본에서, 시끄러웠다하면 주위에 중국인들이 있었다는 그 '우연적 경험'도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어느정도 기여한것 같다.

그래도 경험주의를 배척하는 나는 그러한 경험으로부터 나의 가치관이 더럽혀지는것을 막기위해 노력해야한다.
"중국인이 시끄럽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성급하게 일반화시킨 편견일 뿐이다. "  라고 되뇌인다.

경험은 마음의 눈을 가린다.

우리는 사고실험을 통해, 경험으로 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수양이다.

그것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사고에 대한 열의와 변증법적 사색능력 그리고 그것을 서포트해줄 지적능력이 필요하다.
즉,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노력하는것이 편견으로 부터 자유로워질수 있는 길이리라.

편견으로 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니오가 메이트릭스의 진실을 알았을때,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류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다.
13억 인구가 세뇌를 통해 행복해질수 있다고 믿는 중국정부의 속내처럼, 행복은 의외로 단순할수 있다.

다수의 사람이 편견을 공유할때 그것은 문화라고 불려진다. 편견의 파괴는 엔트로피를 불러온다.
쿼지스태릭 트랜지션(quasi-static transition)을 기준으로, 엔트로피는 일종의 택스(tax)와 같다.

정치권에는 크게 두가지 세력이 존재한다. 하나는 엔트로피, 즉 택스를 지급하고서도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집단과,
나머지 하나는 택스를 끔찍히 싫어하여, 마치 쿼지스태릭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단이다.

전자의 문제는 너무 큰 엔트로피를 유발하여 자칫 문제의 해결이전에 시스템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고,
후자의 문제는 말이 쿼지스태릭이지, 사실상 스태릭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양상은 주로 기득권층에서 나타난다.

두 집단은 사실상 양립할수가 없다. 맨날 싸울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편의상, 엔트로피집단과 쿼지스태릭집단으로 부르기로하면, 엔트로피집단은 문제해결에있어 엔트로피는 인에비터블한것으로 생각한다.
어차피 터질 고름이니 빨리 살을 째고 수술을 하는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쿼지스태릭 집단을 혐변화집단으로 생각하고 비난을 퍼붓는다. 반면, 쿼지스태릭을 추구하는 집단은 엔트로피집단의 시스템붕괴 위험성을 가장 경계해야할 위험으로 생각하여, 그들을 시스템붕괴집단으로 매도한다.

이러한 체제에서 문제해결이란, 두 집단중 한 집단의 패배를 의미한다.

패배는 합의가 아니다.

패배를 인정할순 있지만,  그것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의 해결이 어느 한쪽의 굴복인 이유로 그것은 또다시 갈등을 낳는다. 굴욕은 뒤끝을 남긴다.
두 집단은 항상 복수의 칼날을 갈며 상대방을 굴복시키는것 외에는 다른생각을 할수가 없게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탈 정당체제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그러나 많은 이론적 해법들은 대부분 엄청난 엔트로피를 수반할 것이므로, 쿼지스태릭 집단의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엔트로피가 적은 변화를 단계적으로 적용시켜 푸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또다른 방법으로는, 두집단 모두의 자발적동의 혹은 그러한 세뇌를 얻어내어 '합의'를 통한 시스템개혁을 이뤄내는
'히어로의 등장' 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