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philosophy) 과 논리학(logic)

철학이 개념자체를 탐구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면, 
논리학은 각각의 개념이나 개별문장의 진위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문장들사이의 관계를 따지기 위해서는, 문장의 의미를 파악해야 할때가 많고, 따라서, 문장에 포함되는 개념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논리학은 철학에 종속되거나 브랜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학이 종종 철학으로 부터 자유로울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가정하는 능력'  때문이다.




논증(arguments)

이전의 근거가 되는 문장들을 각각 '프레미스(premise , 전제 )' , 새로운 문장을 '컨클루전 ( conclusion , 결론 )' 이라고 하고,
프레미스와 컨클루전을 합쳐서 '아규먼트(argument , 논증 )' 이라고 한다.


예를들어, 다음의 논증을 보자.


모든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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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앞의 두 문장은 전제이고, 마지막 문장은 결론이다.

우리의 주제가 철학이라면, 위의 논증을 보고, 첫번째 문장에서, '사람 이란 무엇인가? ' 라는 문제부터 시작을 할 것이다. 그리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 논의를 해야한다. 그리고 나서, 어떠한 사고과정을 거친뒤, 마지막 문장을 지지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보게 될 것인데, 논리학은 이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즉, 이미 '사람이 무엇인지' , '죽는다는것은 무엇인지' 에 관해서는 이미 일종의 상호합의가 된 상황이라고 가정한다.
물론, 이러한 가정이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론에  크리티컬하게 작용할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럴때에는 어쩔수 없이, 각종 철학적 논의를 거쳐 합의점에 이르는 수밖에 없다.



기호(symbols)와 형식화(formalization)

문장을 구성하는 성분들은 유한하거나 무한한데, 설령 그것이 유한하다고 하더라도, 만들수 있는 문장은 무한하다. 왜냐면 문장성분을 무한이 이어붙여서 얼마든지 긴 문장을 생성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을 연구하는데 있어, 대상을 지칭하고, 같은 대상의 지칭이 반복될 때마다, 해당 문장을 계속해서 쓰는 일은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기호를 도입하고 그것을 형식화 하는 일은 커다란 효용을 주며 동시에 사고의 효율성에도 크게 기여한다. 이 사고의 효율성은 단지 긴 문장을 간단한 기호로 치환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언어의 모호성과 애매성을 제거하고 명료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예를 나중에 quantifier 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기호를 도입하거나 형식화 하는 것은 사실 임의대로 할수 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무엇을 상징하는지만 오해가 없도록 선언해준다면 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R: 비가내린다.
∧ : 그리고
n: 철수
m: 영희
Lxy : x 는 y 를 사랑한다.

비가내리고, 철수는 영희를 사랑한다.   :    R  ∧   Lnm


형식화는 사고의 효율성 이외에도, 인간언어의 기계적 해석에 한발 다가간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모든것을 임의의 기호로 치환하고, 치환된 기호를 본래의 대상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 또한 "가정하는 능력" 에 기인한다. 기호와 형식화는 그 안에서 일관된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우리의 사고를 왜곡하거나 제한해서는 안된다. 즉, 모든 상상가능한 문장들에 대해서도 형식화가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의 문장도 형식화 가능해야 한다.  직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모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